산모의 피에서 Y 염색체가 나왔다
이 현상이 확인된 방식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사람의 세포에는 성염색체가 있고, Y 염색체는 남성에게만 있다. 그러니 여성의 몸에서 Y 염색체를 가진 세포가 발견된다면, 그것은 그 사람 자신의 세포일 수 없다.
연구자들이 출산 경험이 있는 여성의 혈액을 들여다봤을 때 바로 그 일이 일어났다. 아들을 낳은 여성의 몸에서 Y 염색체를 지닌 세포가 나온 것이다. 출산 직후가 아니었다. 출산한 지 수십 년이 지난 뒤에도 그 세포는 여전히 거기 있었다.
여기서 한 가지 짚어 둘 것이 있다. 이 현상이 아들을 낳은 경우에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딸에게서 온 세포도 똑같이 넘어온다. 다만 딸의 세포는 어머니와 성염색체 구성이 같아서 어느 것이 누구 것인지 구분하기가 어렵다. Y 염색체라는 뚜렷한 표지가 있는 아들 사례가 연구하기 가장 쉬웠던 것뿐이다. 초기 연구가 아들 이야기로 채워진 데는 이런 방법론적 이유가 있다.
Y 염색체는 "이 세포는 내 것이 아니다"를 증명하는 표지 역할을 했다. 이 표지가 없었다면 태아 유래 세포와 자기 세포를 구분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을 것이다. 딸을 낳은 경우에도 같은 현상이 일어나지만, 구분이 어려워 연구 자료가 상대적으로 적다.
미세키메리즘이라는 이름
이 현상에는 미세키메리즘(microchimerism)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이름의 유래가 이 현상의 성격을 잘 설명한다.
키메라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짐승이다. 사자의 머리, 염소의 몸, 뱀의 꼬리가 하나의 몸에 붙어 있는 존재다. 생물학에서 키메라는 한 개체 안에 서로 다른 유전자를 가진 세포가 섞여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 앞에 붙은 '미세(micro)'는 그 양이 아주 적다는 뜻이다. 전체 세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극히 작아, 특별한 방법을 써야 겨우 찾아낼 수 있는 수준이다.
그러니까 아이를 낳은 사람의 몸은 엄밀히 말하면 두 사람의 세포가 섞여 있는 상태다. 우리는 보통 내 몸이 전부 내 유전자로만 이루어져 있다고 여기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흔하다는 뜻이다. 몸의 경계라는 것이 생각보다 흐릿하다.
신장, 간, 폐 — 그리고 뇌
더 눈여겨볼 것은 이 세포들이 발견된 위치다. 혈액에만 떠다니는 것이 아니었다.
보고된 장기는 신장, 간, 비장, 폐, 심장이다. 그리고 뇌에서도 나왔다.
뇌가 특별한 이유가 있다. 뇌에는 혈액뇌장벽이라는 구조가 있다. 혈관과 뇌 조직 사이를 촘촘하게 막아, 아무 물질이나 아무 세포나 함부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문턱이다. 약물 개발에서 가장 어려운 과제 중 하나가 "어떻게 이 장벽을 통과시킬 것인가"일 만큼 단속이 엄격한 곳이다.
태아 유래 세포는 그 문턱까지 넘어간 것으로 보고됐다. 사람의 뇌 조직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이 세포들이 확인됐다. 혈류를 타고 흘러가다 우연히 걸린 것이 아니라, 조직 안에 자리를 잡고 남아 있었다는 이야기다.
태아 유래 세포는 혈액을 순환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여러 장기의 조직 안에 정착했다. 접근이 가장 까다로운 뇌까지 포함해서다. 이것이 이 현상을 단순한 잔여물이 아니라 연구할 가치가 있는 생물학적 사건으로 만들었다.
방향은 하나가 아니다
지금까지는 아이에게서 어머니로 넘어가는 방향만 이야기했다. 그런데 반대 방향도 있다.
어머니의 세포가 태반을 건너 태아 쪽으로 넘어가고, 그 아이의 몸에 평생 남는 경우가 보고돼 있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잠깐 생각해 볼 만하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의 몸에도 어머니의 세포가 남아 있을 수 있다는 뜻이다. 출산 경험과 무관하게, 성별과도 무관하게 그렇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간 경우도 보고됐다. 먼저 태어난 형이나 누나의 세포가 어머니 몸에 남아 있다가, 나중에 임신했을 때 동생에게로 전달되는 경로다. 어머니를 중간 다리로 삼아 형제자매 사이에 세포가 옮겨 가는 셈이다.
그렇게 보면 가족이라는 말의 의미가 조금 달라진다. 유전자를 물려받았다는 뜻만이 아니라, 실제 세포를 나눠 가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럼 이 세포들은 몸 안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여기서부터가 답이 정해지지 않은 영역이다. 지금까지 나온 결과들이 한 방향으로 모이지 않고, 오히려 정반대로 갈려 있다.
방패라는 쪽의 증거
좋은 쪽 이야기부터 보자.
혈액에서 태아 유래 세포가 확인된 여성은 나중에 유방암에 걸릴 위험이 더 낮았다는 연구가 있다. 방광암에서도 비슷한 방향의 보고가 나왔다.
왜 그런지에 대한 해석도 함께 제시됐다. 손상된 조직을 수리하는 자리에 이 세포들이 모여든다는 관찰이 있었기 때문이다. 몸 어딘가에 문제가 생기면 그쪽으로 이동해 복구에 참여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일종의 예비 수리공이자 감시자 역할을 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비유하자면 몸에 문제가 생겼을 때 달려가는 소방대가 한 팀 더 있는 셈이다. 원래 갖고 있던 면역 체계 외에, 출처가 다른 세포 집단이 조직 복구와 감시에 참여한다는 그림이다.
태아 유래 세포가 손상 부위로 이동해 복구에 참여한다는 관찰이 근거다. 이 기능이 암 감시로도 이어진다면, 이 세포를 지닌 사람에게서 특정 암 위험이 낮게 나오는 것을 설명할 수 있다. 다만 이는 관찰에 대한 해석이지, 검증된 기전이 아니다.
짐이라는 쪽의 증거
그런데 반대쪽 결과도 만만치 않다.
같은 방식으로 살펴본 연구에서 대장암 위험은 오히려 높게 나왔다. 유방암에서 낮게 나온 것과 정반대 방향이다.
더 직접적인 관찰도 있다. 유방 종양 조직을 들여다본 연구에서, 아들을 낳은 여성의 종양 부위에서 남성 세포가 정상 조직이나 혈액보다 훨씬 높은 농도로 검출됐다. 태아 유래 세포가 종양이 있는 곳에 유독 몰려 있었다는 뜻이다.
문제는 이 장면을 어떻게 읽느냐다. 두 가지 해석이 모두 가능하다.
같은 장면을 두고 소방관이 왔다고 읽을 수도 있고, 불구경하는 사람이 모였다고 읽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현재 관찰만으로는 어느 쪽인지 갈리지 않는다. 같은 세포가 어떤 암에서는 방패였다가 다른 암에서는 짐이 되는 셈이다.
왜 정반대 결과가 나오는가
결과가 엇갈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 세포들의 역할이 한 가지로 고정돼 있지 않을 가능성이다. 연구자들이 꼽는 변수는 크게 셋이다.
이 세 변수가 조합되면 결과가 한 방향으로 모이지 않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다. 유방과 대장은 조직 환경이 다르고, 그곳에 정착한 세포가 겪는 일도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현상은 암에서만 거론되는 것이 아니다. 자가면역질환이나 알츠하이머 같은 다른 질환과 함께 논의된 보고도 있다. 자가면역질환에서 특히 주목받은 이유는 짐작할 만하다. 내 것이 아닌 세포가 몸 안에 오래 머물면, 면역계가 그것을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도움과 부담이 한 몸에 들어 있는 셈이다.
관찰연구의 벽 — 상관과 인과
여기서 냉정하게 짚어야 할 것이 있다. 이 글에 나온 연구들은 대부분 관찰연구다. 이것이 왜 중요한지 조금 풀어서 보자.
관찰연구는 이미 벌어진 일을 들여다보는 방식이다. 태아 유래 세포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중 어느 쪽에서 유방암이 덜 생겼는지를 확인한다. 여기서 차이가 나왔다고 해서, 세포가 원인이라는 뜻은 아니다. 최소한 두 가지 설명이 남는다.
현재 자료로는 A와 B를 가려낼 수 없다. 상관관계는 확인됐지만 인과는 증명되지 않았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만약 B가 맞다면, 이 세포를 늘리려는 어떤 시도도 암 위험을 바꾸지 못한다. 온도계를 조작한다고 방 안이 따뜻해지지 않는 것과 같다. 원인과 표지를 혼동하면 엉뚱한 개입으로 이어진다. 건강 정보를 읽을 때 가장 자주 무너지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지침이 없는 이야기를 왜 하는가
솔직하게 적자면 이 글에는 당장 실천할 지침이 없다. 받아볼 검사도 없고, 관리할 수치도 없고, 바꿀 생활습관도 없다. 암 예방을 생각한다면 금연, 절주, 체중 관리, 정기 검진처럼 이미 근거가 확립된 방법을 따르는 것이 맞다. 미세키메리즘은 아직 그 목록에 들어갈 단계가 아니다.
그런데도 이 이야기를 정리해 두고 싶었던 이유가 있다.
하나는 연구가 실제로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보여 주는 사례여서다. 결과가 엇갈리고, 해석이 갈리고, 그 갈림이 정리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상태 — 이것이 과학의 실제 모습에 가깝다. 건강 정보는 대개 결론만 잘라서 전달되지만, 결론이 나지 않은 영역이 훨씬 넓다.
다른 하나는 이 사실 자체가 남기는 감각 때문이다. 우리 몸이 생각만큼 딱 떨어지게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 열 달을 함께 보낸 흔적이 지금도 어딘가에 조용히 남아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방향이 한쪽이 아니어서, 지금 이 글을 읽는 사람의 몸에도 어머니에게서 온 세포가 있을 수 있다는 것.
당장 무엇을 하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오늘 부모님께 전화 한 통 하기에는 충분한 이유가 아닐까 싶다.
자주 묻는 질문
미세키메리즘은 병인가요?
아닙니다. 임신을 겪은 사람에게 흔하게 나타나는 생리적 현상으로 보고돼 있습니다. 질병으로 분류되지 않으며 치료 대상도 아닙니다. 여러 질환과 함께 관찰된 보고가 있어 연구 주제로 다뤄지고 있을 뿐이고, 그 관계도 아직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검사로 확인할 수 있나요?
일반 병원에서 받을 수 있는 검사는 없습니다. 연구에서는 남성에게만 있는 Y 염색체를 표적으로 삼는 특수한 방법을 씁니다. 세포의 양이 매우 적어 정밀한 기법이 필요하고, 임상 진료용 검사 항목으로 자리 잡지 않았습니다. 결과를 알아도 현재로서는 바꿀 조치가 없다는 점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들을 낳아야만 생기나요?
아닙니다. 태아의 성별과 무관하게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다만 딸에게서 온 세포는 어머니 세포와 성염색체 구성이 같아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Y 염색체라는 뚜렷한 표지가 있는 아들 사례가 연구하기 쉬웠던 것뿐이고, 이것이 초기 연구가 아들 중심으로 채워진 이유입니다.
이걸 알면 암 예방에 도움이 되나요?
현재로서는 실천으로 옮길 지침이 없습니다. 연구 단계의 주제이고, 결과도 암 종류에 따라 엇갈립니다. 암 예방은 금연, 절주, 체중 관리, 정기 검진처럼 근거가 확립된 방법을 따르는 것이 맞습니다.
남성에게도 있나요?
있을 수 있습니다. 어머니의 세포가 태아 쪽으로 건너가 평생 남는 반대 방향이 보고돼 있기 때문입니다. 성별과 관계없이 어머니에게서 온 세포를 지니고 있을 가능성이 있고, 먼저 태어난 형제자매의 세포가 어머니를 거쳐 전달된 경우도 보고됐습니다.
참고 자료
이 글은 아래 자료를 바탕으로 정리했다. 본문의 해석은 각 연구의 결론을 넘어서지 않도록 했고, 확인되지 않은 부분은 그렇다고 밝혔다.
- Feto-maternal microchimerism: Memories from pregnancy. iScience. 2022. — PMC8762399
- Fetal microchimerism in human brain tumors. Brain Pathology. — PMC5884742
- Heterogeneous Distribution of Fetal Microchimerism in Local Breast Cancer Environment. — PMC47265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