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가 먼저 있었다 — 1965년 만보계
만 보라는 숫자의 출처는 연구진이 직접 적어 두었다. 2019년 미국 연구진이 고령 여성의 걸음 수를 다룬 논문 서론에서, 하루 만 보라는 목표는 일반인 사이에서 건강에 필요하다고 널리 믿어지지만 과학적 근거는 제한적이라고 쓰고, 그 기원을 이렇게 설명했다. 1965년 일본의 한 시계 · 계측기 회사가 판매한 보행계의 제품 이름이 «만보계(萬步計)», 곧 «만 보 미터»였고, 숫자가 여기서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짚어 둘 것은 이 설명의 표현이다. 연구진은 «그럴 가능성이 크다(likely)»라고 적었다. 확실한 기록으로 단정한 것이 아니라, 숫자의 유래로 가장 유력한 설명을 제시한 것이다.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 만 보는 사람들의 걸음 수와 건강을 재서 얻은 값이 아니라, 제품 이름으로 먼저 존재했던 숫자라는 점이다.
2022년 메타분석 역시 첫 문장에서 같은 문제를 짚었다. 하루 만 보가 건강에 좋다고 널리 권장되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는 적다는 것이다. 숫자가 먼저 자리를 잡았고, 연구는 반세기 넘게 지나서야 그 숫자를 따져 보기 시작했다.
첫 번째 대답 — 고령 여성 1만 6천여 명
만 보라는 숫자를 정면으로 겨냥한 연구 중 자주 인용되는 것이 2019년 미국 여성건강연구(Women's Health Study) 분석이다. 연구진은 가속도계를 7일 동안 찬 여성 가운데 착용 기준을 채운 16,741명을 분석했고, 이들의 평균 나이는 72.0세였다. 평균 걸음 수는 하루 5,499보였고, 평균 4.3년을 추적하는 동안 504명이 사망했다.
걸음 수를 네 묶음으로 나눠 보니 묶음별 중앙 걸음 수는 2,718 · 4,363 · 5,905 · 8,442보였다. 가장 적게 걷는 묶음을 기준으로 다른 요인을 보정한 사망 위험비는 차례로 0.59 · 0.54 · 0.42였다. 연구진은 결론에서 하루 약 4,400보만 걸어도 약 2,700보를 걷는 사람보다 사망률이 의미 있게 낮았고, 걸음 수가 늘수록 사망률이 낮아지다가 하루 약 7,500보에서 평평해졌다고 정리했다.
이 연구가 흔히 «만 보는 필요 없다»로 옮겨지지만, 연구진이 스스로 그은 선이 있다. 대상은 평균 70대의 미국 여성이었고, 연구진은 참여자가 주로 백인이며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고 전국 평균보다 활동적이었다고 밝히면서 다른 집단에도 결과가 그대로 맞는지는 분명하지 않다고 적었다. 또 관찰 연구라서 몸이 좋지 않은 사람이 덜 걷게 된 «역인과»의 가능성이 남는다고 했다.
나이를 넓혀 본 2020년 미국 성인 연구
2020년에는 미국 국민건강영양조사 참여자 가운데 40세 이상 4,840명의 가속도계 자료를 분석한 연구가 나왔다. 참여자의 평균 나이는 56.8세, 평균 걸음 수는 하루 9,124보였고, 평균 10.1년 추적 동안 1,165명이 사망했다.
연구진은 나이 · 성별 · 식사 · 흡연 · 체질량지수 · 기존 질환 등을 보정한 뒤, 하루 4,000보와 비교해 8,000보는 전체 사망 위험비 0.49, 12,000보는 0.35와 연관됐다고 보고했다. 이 연구에서는 만 보를 넘는 구간에서도 위험이 계속 낮아지는 방향이 보였다는 점이 2019년 고령 여성 연구와 다르다. 대상의 나이와 평소 활동량이 다르면 곡선 모양도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열다섯 개 코호트를 합친 2022년 메타분석
여러 나라 연구를 한데 모은 것이 2022년 Lancet Public Health의 메타분석이다. 연구진은 15개 연구의 참여자 개인 자료를 같은 방식으로 다시 분석했고, 대상은 성인 47,471명, 중앙 추적 기간 7.1년 동안 사망은 3,013명이었다.
걸음 수 네 묶음의 중앙값은 3,553 · 5,801 · 7,842 · 10,901보였다. 가장 적게 걷는 묶음과 비교한 보정 위험비는 둘째 묶음 0.60, 셋째 0.55, 넷째 0.47이었다. 숫자를 나란히 놓으면 가장 큰 차이는 첫째에서 둘째 묶음으로 넘어가는 자리에서 생기고, 그 뒤로는 내려가는 폭이 줄어든다.
이 메타분석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부분은 나이에 따른 차이다. 곡선 분석에서 60세 이상은 하루 6,000~8,000보까지, 60세 미만은 8,000~10,000보까지 걸음 수가 늘수록 사망 위험이 점점 낮아졌다. 그 지점을 넘어서면 위험이 더 내려가지 않고 평평해졌다는 뜻이다. 만 보라는 하나의 숫자 대신, 나이에 따라 다른 구간이 나온 셈이다.
빠르게 걸으면 더 좋은가
걸음 수와 함께 자주 묻는 것이 걷는 빠르기다. 이 메타분석은 걸음 수를 보정한 뒤에도 하루 중 가장 빨리 걸은 30분의 걸음 속도가 높은 쪽이 위험비 0.67로 낮았지만, 분당 100보 또는 그보다 빠르게 걸은 시간은 의미 있는 연관이 없었다고 보고했다. 2019년 고령 여성 연구와 2020년 미국 성인 연구도 걸음 수를 보정하자 빠르기의 연관이 대부분 약해지거나 의미가 없어졌다고 적었다. 지금까지의 관찰 자료로는 «얼마나 빨리»보다 «하루에 얼마나 많이»가 더 일관되게 사망률과 함께 움직였다고 정리할 수 있다.
2023년 메타분석 — 많을수록 낮아지는 방향
2023년 유럽예방심장학회지에 실린 메타분석은 17개 코호트 226,889명을 묶었다. 중앙 추적 기간은 7.1년이었다. 연구진은 하루 걸음이 1,000보 늘 때마다 전체 사망 위험이 15%, 500보 늘 때마다 심혈관 사망 위험이 7% 낮은 것과 연관됐다고 보고했다.
이 분석은 기준점을 낮은 쪽에서 잡았다. 전체 사망은 하루 3,867보, 심혈관 사망은 2,337보부터 그보다 많이 걸을수록 위험이 낮아지는 연관이 보였다고 결론에 적었다. 2022년 메타분석이 «어디서 평평해지는가»를 보여 줬다면, 2023년 분석은 «얼마부터 차이가 나기 시작하는가»를 보여 준 셈이다. 두 결과는 서로 부딪히기보다, 같은 곡선의 아래쪽과 위쪽을 각각 비춘 것에 가깝다.
세계보건기구 권고는 걸음 대신 «분»으로 적는다
공식 권고는 어떻게 적혀 있을까. 세계보건기구의 2020년 신체활동 지침은 성인에게 주당 150~300분의 중강도 유산소 활동, 또는 75~150분의 고강도 활동을 권하고, 주 2일 이상 주요 근육을 쓰는 근력 운동을 함께 권한다. 노인에게는 여기에 더해 균형과 근력을 함께 쓰는 복합 활동을 주 3일 이상 하라고 권한다. 이 지침 본문은 활동량을 걸음 수가 아니라 시간과 강도로 적는다.
세계보건기구 자료는 성인의 31%가 권고 수준에 못 미친다고 밝히면서, 조금이라도 몸을 움직이는 편이 전혀 안 하는 것보다 낫다는 원칙을 앞세운다. 걸음 수 연구들이 공통으로 보여 준 «가장 큰 차이는 적게 걷는 쪽에서 생긴다»는 결과와 같은 방향의 메시지다.
확정된 것과 연구진의 주장을 가르면
지금까지의 내용을 확정된 것과 아직 말할 수 없는 것으로 나누면 이렇다.
확정된 사실(원문으로 확인한 것)
- 만 보는 1965년 일본 만보계의 제품 이름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연구진의 설명이다. 걸음 수를 재서 정한 숫자가 아니다.
- 네 편의 연구 모두에서 하루 걸음 수가 많은 쪽의 사망률이 낮았다.
- 위험이 평평해지는 지점은 연구와 나이에 따라 달랐다(고령 여성 약 7,500보, 60세 이상 6,000~8,000보, 60세 미만 8,000~10,000보).
- 걸음 수를 보정하면 걷는 빠르기와의 연관은 대체로 약해졌다.
연구진의 해석 · 아직 열린 질문
- 걸음을 늘리면 사망 위험이 줄어든다는 인과는 관찰 연구로는 증명되지 않는다. 아픈 사람이 덜 걷는 역인과가 섞였을 수 있다.
- 미국 · 유럽 중심의 자료가 한국인에게 같은 숫자로 맞는지는 이 연구들이 답하지 않았다.
- 질환이 있는 사람에게 안전한 걸음 수 범위는 이 연구들의 대상이 아니다.
숫자를 내 생활로 옮길 때
연구들이 개인의 목표 숫자를 정해 주지는 않는다. 다만 숫자를 읽는 방법은 정리할 수 있다.
- 만 보를 합격선으로 읽지 않는다. 연구들에서 가장 큰 차이가 난 자리는 적게 걷는 쪽에서 조금 더 걷는 쪽으로 옮겨 가는 구간이었다. 만 보를 못 채운 날도 의미가 없는 날이 아니다.
- 자기 평소 걸음 수부터 본다. 휴대전화나 시계에 쌓인 몇 주치 평균이 출발점이다. 목표는 그 평균에서 조금씩 늘리는 쪽으로 잡는 것이 연구가 보여 준 곡선과 맞는 방향이다.
- 걸음 수는 활동의 일부만 센다. 세계보건기구 권고는 시간 · 강도 · 근력 · 균형을 함께 적는다. 자전거나 수영처럼 걸음으로 잡히지 않는 활동, 근력 운동은 걸음 수에 나타나지 않는다.
- 질환이 있으면 일반론을 쓰지 않는다. 심장 · 폐 · 관절 질환이 있거나 넘어질 위험이 큰 사람은 주치의와 운동 범위를 먼저 정한다.
자주 묻는 질문
하루 만 보는 과학적으로 정해진 숫자인가요?
아닙니다. 2019년 연구진은 이 숫자가 1965년 일본에서 팔린 보행계의 제품 이름 «만보계»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습니다. 2022년 메타분석도 만 보가 널리 권장되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는 적다고 적었습니다.
그러면 몇 보를 걸으면 되나요?
연구마다 다릅니다. 2022년 메타분석에서는 60세 이상은 하루 6,000~8,000보, 60세 미만은 8,000~10,000보에서 사망 위험이 더 내려가지 않고 평평해졌습니다. 다만 이는 관찰 연구의 평균적인 경향이고, 개인의 목표는 평소 걸음 수와 건강 상태에 따라 정하는 것이 맞습니다.
만 보를 넘게 걸으면 오히려 해로운가요?
이 글에서 본 연구들에서 많이 걷는 쪽의 사망률이 높아지는 결과는 보고되지 않았습니다. 평평해졌다는 것은 더 걸어도 사망 위험이 그만큼 더 낮아지지는 않았다는 뜻이지, 해롭다는 뜻이 아닙니다. 관절 통증 등 개인의 상태는 별개로 살펴야 합니다.
빨리 걷는 것이 더 좋은가요?
걸음 수를 보정하고 나면 걷는 빠르기와 사망률의 연관은 대체로 약해지거나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2022년 메타분석에서는 가장 빨리 걸은 30분의 속도가 높은 쪽이 위험비 0.67로 낮았지만, 분당 100보 이상 걸은 시간은 의미 있는 연관이 없었습니다. 지금 자료로는 하루 전체 걸음 수가 더 일관된 지표입니다.
이 연구들로 걷기가 수명을 늘린다고 말할 수 있나요?
말할 수 없습니다. 네 편 모두 관찰 연구여서 걸음 수와 사망률이 함께 움직였다는 연관까지를 보여 줍니다. 2019년 연구진도 몸이 좋지 않은 사람이 덜 걷게 되는 역인과의 가능성이 남는다고 적었습니다. 걷기의 효과를 판단할 때는 이 한계를 함께 읽어야 합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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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luch AE, et al. Daily steps and all-cause mortality: a meta-analysis of 15 international cohorts. Lancet Public Health. 2022 — 15개 연구 47,471명, 사분위 중앙 걸음 수와 위험비, 60세 이상 6,000~8,000보 · 60세 미만 8,000~10,000보, 걸음 빠르기 결과. pmc.ncbi.nlm.nih.gov
- Saint-Maurice PF, et al. Association of Daily Step Count and Step Intensity With Mortality Among US Adults. JAMA. 2020 — 미국 40세 이상 4,840명, 4,000보 대비 8,000보 · 12,000보 위험비, 걸음 수를 맞춘 뒤 빠르기와 사망률. pmc.ncbi.nlm.nih.gov
- Banach M, et al. The association between daily step count and all-cause and cardiovascular mortality: a meta-analysis. European Journal of Preventive Cardiology. 2023 — 17개 코호트 226,889명, 1,000보마다 전체 사망 15% · 500보마다 심혈관 사망 7% 낮은 연관, 3,867보 · 2,337보 기준점. doi.org
- Bull FC, et al. World Health Organization 2020 guidelines on physical activity and sedentary behaviour. British Journal of Sports Medicine. 2020 — 성인 주 150~300분 중강도 또는 75~150분 고강도, 근력 주 2일 이상, 노인 균형 · 근력 복합 활동 주 3일 이상. pmc.ncbi.nlm.nih.gov
- World Health Organization. Physical activity fact sheet. 2024 — 성인 31%가 권고 수준에 못 미침, 조금이라도 하는 편이 안 하는 것보다 낫다는 원칙. who.i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