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에서 거시로 — 카메라를 뒤로 빼다
지금까지 배운 것은 모두 미시경제학(microeconomics)이었다. 한 상품의 가격이 어떻게 정해지는지, 소비자가 한 잔의 커피를 더 마실지 말지를 어떻게 결정하는지, 한 기업이 완전경쟁과 독점에서 어떻게 생산량을 고르는지. 카메라를 바짝 들이대고 개별 경제주체의 선택을 들여다보는 작업이다.
6강부터 들어가는 거시경제학(macroeconomics)은 정반대다. 카메라를 한참 뒤로 빼서 나라 경제 전체를 한 화면에 담는다. 개별 기업이 아니라 모든 기업을 합친 총생산, 개별 소비자가 아니라 전 국민의 소비, 한 상품의 가격이 아니라 물가 전반, 한 사람의 실직이 아니라 실업률. 관심사가 총량(aggregate)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거시경제학이 답하려는 질문은 결국 세 가지다. 우리 경제는 얼마나 크고 얼마나 성장하는가(성장), 물가는 왜 오르내리는가(인플레이션), 그리고 일자리는 충분한가(실업). 이 세 질문 모두 출발점은 똑같다. 먼저 경제의 크기부터 재야 한다. 환자의 키와 체중을 모르면 진단을 시작할 수 없는 것과 같다. 그 체중계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GDP다.
미시경제학은 "나무"를, 거시경제학은 "숲"을 본다. 그리고 숲의 크기를 재는 첫 자(尺)가 GDP다. 거시경제학의 모든 논의는 이 숫자 하나에서 시작한다.
GDP의 정의, 단어 하나씩 뜯어보기
GDP(Gross Domestic Product, 국내총생산)의 표준 정의는 이렇다. "일정 기간 동안 한 나라 안에서 생산된 모든 최종생산물의 시장가치." 한 문장이지만 그 안에 조건이 네 개나 숨어 있고, 시험에서 함정이 나오는 곳도 바로 이 네 단어다. 하나씩 풀어 본다.
"일정 기간 동안" — 유량(flow) 개념
GDP는 보통 1년(또는 분기)이라는 기간을 정해 그 안에 새로 생산된 것만 센다. 작년에 지은 아파트는 작년 GDP에 들어갔지, 올해 다시 세지 않는다. 시점이 아니라 기간에 걸쳐 쌓이는 유량 개념이다.
"한 나라 안에서" — 국경 기준(영토)
국적이 아니라 위치가 기준이다. 한국에 있는 미국계 공장이 만든 것은 한국 GDP에 들어가고, 미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이 미국 땅에서 만든 것은 미국 GDP에 들어간다. 국적 기준인 GNI와 갈리는 핵심 지점이다.
"최종생산물" — 중간재 제외
최종소비자에게 팔리는 완성품만 센다. 빵을 만들기 위해 들어간 밀가루 같은 중간재는 따로 세지 않는다. 안 그러면 같은 가치를 두 번 세는 이중계산이 일어난다(다음 절에서 상술).
"시장가치" — 시장에서 거래된 것
가격표가 붙어 시장에서 거래된 것만 화폐 단위로 합산한다. 사과 10개와 자동차 1대를 더할 수 없으니, 가격을 곱해 같은 화폐 단위로 환산해 더한다. 시장을 거치지 않은 가사노동·자급자족은 빠진다(GDP의 한계로 이어짐).
중고차 거래, 주식 매매, 정부의 연금 지급은 GDP에 들어가지 않는다. 새로 생산된 것이 아니라 이미 있던 것의 소유권이나 돈이 이동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단, 중고차를 팔아 준 중개인의 수수료는 올해 새로 제공된 서비스이므로 GDP에 포함된다.
중간재를 빼는 이유 — 부가가치
왜 중간재를 빼야 하는지는 빵 한 덩이의 일생을 따라가면 단번에 이해된다. 농부가 밀을 길러 제분소에 팔고, 제분소는 밀가루를 빵집에 팔고, 빵집은 빵을 손님에게 판다. 각 단계의 거래액을 그냥 다 더해 보자.
| 단계 | 판매액 | 매입 비용(중간재) | 부가가치 |
|---|---|---|---|
| 농부 (밀) | 1,000원 | 0원 | 1,000원 |
| 제분소 (밀가루) | 1,800원 | 1,000원 | 800원 |
| 빵집 (빵) | 3,000원 | 1,800원 | 1,200원 |
| 합계 | 5,800원 | 2,800원 | 3,000원 |
판매액을 단순히 다 더하면 5,800원이다. 그런데 빵 한 덩이가 실제로 소비자에게 준 가치는 최종 가격인 3,000원뿐이다. 5,800원으로 세면 밀과 밀가루의 가치를 두 번, 세 번 중복해서 세는 셈이다. 이것이 이중계산(double counting) 문제다.
해결책은 두 가지인데, 결과는 정확히 같다. 첫째, 최종생산물의 값(빵 3,000원)만 센다. 둘째, 각 단계가 새로 더한 가치, 즉 부가가치(판매액 − 중간재 매입액)만 더한다. 위 표에서 부가가치 합계도 정확히 3,000원이다. 이 둘이 일치한다는 사실이 곧 다음 절에서 다룰 "GDP를 어느 방향에서 재도 같은 값이 나온다"는 원리의 뿌리다.
부가가치 = 판매액 − 중간재 매입액
한 나라의 모든 생산 단계에서 발생한 부가가치를 전부 더하면, 그것이 곧 GDP다. 그래서 GDP를 "한 나라가 1년 동안 새로 만들어 낸 부가가치의 총합"이라고 바꿔 말해도 정확히 같은 뜻이 된다.
한 숫자를 세 방향에서 — 생산·분배·지출
GDP의 묘한 점은, 전혀 다른 세 가지 방법으로 재도 같은 값이 나온다는 것이다. 생산된 물건의 부가가치를 더하든, 그 생산으로 누군가가 번 소득을 더하든, 그 물건에 누군가가 쓴 돈을 더하든 결국 같다. 만든 만큼 누군가는 벌었고, 번 만큼 누군가는 썼기 때문이다. 이를 국민소득 삼면등가의 법칙이라 부른다.
① 생산 접근
앞 절에서 본 그대로다. 농림어업·제조업·서비스업 등 모든 산업이 만들어 낸 부가가치를 전부 더한다. "무엇이 얼마나 만들어졌나"를 본다.
② 분배(소득) 접근
생산이 이뤄지면 그 대가가 누군가의 소득으로 돌아간다. 일한 사람에게는 임금, 돈을 빌려준 사람에게는 이자, 땅·건물을 빌려준 사람에게는 지대, 기업가에게는 이윤으로 나뉜다. 이 소득을 모두 더해도 GDP가 된다. 생산물의 가치는 결국 누군가의 주머니로 빠짐없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③ 지출 접근
실무에서 가장 자주 쓰이는 방법이다. 만들어진 것을 "누가 사 갔나"로 따진다. 사 가는 주체는 가계·기업·정부·외국 넷뿐이고, 이를 식으로 쓰면 다음과 같다.
GDP = C + I + G + NX
C (소비, Consumption) — 가계가 음식·옷·서비스에 쓴 돈. 보통 GDP의 가장 큰 몫.
I (투자, Investment) — 기업의 설비·건물 구입, 재고 증가, 신규 주택 건설. (주식 매수는 여기서 말하는 투자가 아님)
G (정부지출, Government) — 정부가 도로·국방·공무원 서비스 등에 쓴 돈. (연금·실업급여 같은 이전지출은 제외)
NX (순수출, Net eXport = 수출 − 수입) — 외국이 사 간 것(수출)에서 우리가 외국 것을 산 것(수입)을 뺀 값. 무역적자면 음(−)이 될 수도 있다.
한국은 수출 비중이 큰 경제라 NX가 GDP 성장률을 좌우하는 일이 잦다. 반도체 수출이 살아나면 NX가 GDP를 끌어올리고, 반대로 원자재 수입이 급증하면 NX가 GDP를 깎는 식이다. 뉴스에서 "수출 호조로 성장률이 올랐다"고 할 때 작동하는 것이 바로 이 NX 항목이다.
명목GDP와 실질GDP, 그리고 디플레이터
GDP를 시간에 따라 비교할 때 반드시 부딪히는 함정이 있다. 작년 GDP가 1,000조, 올해 1,100조라면 경제가 10% 커진 것일까? 꼭 그렇지 않다. 생산량은 그대로인데 물가만 10% 올라도 GDP 숫자는 10% 커진다. 양은 그대로인데 가격표만 바뀐 가짜 성장을 진짜 성장과 구분해야 한다. 그래서 GDP를 두 가지로 나눈다.
| 구분 | 명목GDP (Nominal) | 실질GDP (Real) |
|---|---|---|
| 적용 가격 | 그해의 가격(경상가격) | 기준연도의 불변가격 |
| 물가 영향 | 물가 변동이 그대로 섞임 | 물가 영향을 걷어 냄 |
| 측정하는 것 | 현재의 경제 규모(체감 크기) | 순수한 생산량의 변화(진짜 성장) |
간단한 예를 들자. 어떤 나라가 빵만 만든다고 하자. 기준연도(작년)에 빵 100개를 개당 1,000원에 팔았다. 올해는 빵 110개를 개당 1,200원에 팔았다.
- 올해 명목GDP = 110개 × 1,200원(올해 가격) = 132,000원
- 올해 실질GDP = 110개 × 1,000원(기준연도 가격) = 110,000원
- 작년 GDP = 100개 × 1,000원 = 100,000원
명목으로 보면 10만 원에서 13.2만 원으로 32% 늘어난 듯하지만, 그중 진짜 생산량 증가는 실질GDP가 보여주는 10%(10만→11만)뿐이다. 나머지 20%는 가격이 오른 착시다. 그래서 경제가 "진짜로" 얼마나 성장했는가를 볼 때는 언제나 실질GDP를 쓴다. 다음 글(6강 Part 2)의 경제성장 논의도 전부 실질GDP가 주인공이다.
GDP디플레이터 — 물가의 또 다른 얼굴
명목과 실질을 알면 물가 수준도 거꾸로 계산할 수 있다. 명목GDP를 실질GDP로 나눠 100을 곱한 값을 GDP디플레이터라 부른다.
GDP디플레이터 = (명목GDP ÷ 실질GDP) × 100
위 예라면 (132,000 ÷ 110,000) × 100 = 120. 기준연도 100에서 120으로, 즉 전반적 물가가 20% 올랐다는 뜻이다.
GDP디플레이터는 우리가 흔히 아는 소비자물가지수(CPI)와 더불어 물가를 재는 대표 지표다. CPI가 소비자가 사는 정해진 품목 묶음의 가격만 보는 반면, GDP디플레이터는 그해 생산된 모든 재화·서비스를 대상으로 하므로 경제 전반의 물가를 더 폭넓게 반영한다. 같은 물가라도 어느 자로 재느냐에 따라 숫자가 달라지는 것이다.
GDP가 말하지 않는 것들
GDP는 경제 규모를 재는 데 가장 널리 쓰이는 강력한 지표지만, 만능은 아니다. 시험에서도 자주 나오고 현실에서도 중요한, GDP가 놓치는 영역을 정리해 둔다.
- 시장을 거치지 않은 활동 — 부모가 집에서 하는 가사노동·육아, 텃밭에서 길러 먹는 자급자족 농산물은 값이 매겨지지 않아 GDP에서 빠진다. 똑같은 일을 가사도우미에게 돈 주고 맡기면 그제야 GDP에 잡히는 역설이 생긴다.
- 지하경제 — 신고되지 않는 현금 거래, 불법 거래 등은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 여가와 삶의 질 — 똑같이 GDP가 100인 두 나라라도, 한쪽은 주 40시간 일하고 한쪽은 주 60시간 일했다면 삶의 질은 전혀 다르다. GDP는 이 차이를 담지 못한다.
- 환경 파괴 — 공장이 강을 오염시키며 물건을 만들면 생산은 GDP에 더해지지만, 망가진 환경이라는 비용은 빠진다. 심지어 오염을 치우는 데 든 돈마저 GDP를 늘린다.
- 소득분배 — GDP는 평균(총량)일 뿐, 그 부가 골고루 퍼졌는지 소수에게 쏠렸는지는 말해 주지 않는다. 1인당 GDP가 높아도 양극화가 심하면 다수의 체감은 다르다.
이 한계 때문에 학자들은 GDP를 보완할 지표를 꾸준히 만들어 왔다. 환경 비용을 반영한 그린GDP, 분배·여가·건강까지 넣은 인간개발지수(HDI), 부탄의 국민총행복(GNH) 같은 시도들이다. 그럼에도 GDP가 여전히 표준으로 쓰이는 이유는, 한계가 있을지언정 나라마다·해마다 일관되게 비교할 수 있는 가장 객관적인 잣대이기 때문이다. "불완전하지만 대체할 만한 게 마땅치 않은 지표"라고 이해하면 적당하다.
한국의 1인당 GDP는 3만 달러대로 선진국 문턱에 올라섰지만, 노동시간은 OECD 상위권이고 가사·돌봄의 상당 부분이 무급으로 처리된다. GDP 숫자만 보면 보이지 않는 이 격차가, GDP의 한계를 한국 현실에서 그대로 보여 준다.
GDP의 사촌들 — GNI·NNP
국민소득을 재는 지표는 GDP 하나가 아니다. 목적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정의된 사촌들이 있다. 헷갈리기 쉬운 것만 골라 둔다.
| 지표 | 기준 | 특징 |
|---|---|---|
| GDP (국내총생산) | 영토(국경) 안 | 누구든 우리 땅에서 만든 것 |
| GNI (국민총소득) | 국적(국민) | 우리 국민이 어디서든 번 소득. 체감 생활수준에 가까움 |
| NNP (국민순생산) | GNP − 감가상각 | 기계·설비가 닳은 만큼을 뺀 순수 생산 |
핵심 차이는 GDP와 GNI 사이에 있다. GDP는 '어디서' 만들었나(영토)를, GNI는 '누가' 벌었나(국적)를 본다. 한국 기업이 베트남 공장에서 올린 이익은 베트남 GDP이자 한국 GNI에 들어간다. 반대로 한국에 진출한 외국계 기업의 이익은 한국 GDP이지만 한국 GNI는 아니다. 그래서 해외 진출이 활발하거나 해외 투자 수익이 많은 나라는 GNI가 GDP보다 커지는 경향이 있다. 국민의 실제 살림살이 수준을 볼 때는 GDP보다 GNI가 더 와닿는 이유다.
한국은 제조업 해외 진출과 해외 투자 자산이 꾸준히 늘면서 GNI가 GDP를 웃도는 구조로 자리 잡았다. 국내 공장에서 찍어내는 물건의 양(GDP)만 보면 잘 잡히지 않던 '우리 국민이 세계 곳곳에서 벌어들이는 소득'이 GNI에는 반영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같은 한 해를 두고도 어느 지표를 보느냐에 따라 경제의 인상이 달라진다. 생산 활력을 보려면 GDP를, 국민 호주머니의 형편을 보려면 GNI를 집어 드는 식으로, 지표는 목적에 맞춰 골라 써야 한다는 점만 기억해 두면 된다.
요약
경제학개론 6강 Part 1에서 다룬 거시경제학의 출발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미시 → 거시 — 개별 시장에서 나라 경제 전체(총량)로 시선을 옮긴다. 그 크기를 재는 첫 자가 GDP.
- GDP의 정의 — 일정 기간·한 나라 안에서·최종생산물의·시장가치. 네 단어 모두 함정 포인트.
- 부가가치 — 중간재를 빼는 이유는 이중계산 방지. GDP = 최종생산물 가치 = 부가가치 총합.
- 삼면등가 — 생산·분배(소득)·지출 어느 방향에서 재도 GDP는 같다. 지출 접근: GDP = C + I + G + NX.
- 명목 vs 실질 — 실질GDP는 물가 영향을 걷어 낸 진짜 성장. GDP디플레이터 = (명목÷실질)×100.
- GDP의 한계 — 가사노동·자급자족·지하경제·여가·환경·분배를 놓친다. 그럼에도 비교 가능성 때문에 표준으로 쓰임.
- GNI — 영토 기준 GDP와 달리 국적 기준. 국민의 체감 생활수준에 더 가깝다.
다음 글에서는 6강의 나머지 절반, 경제성장과 총수요·총공급(AD-AS)을 다룬다. 이번에 잰 GDP가 시간에 따라 왜 커지고(성장), 그 크기가 단기적으로 왜 출렁이는지(경기변동)를 한 장의 그래프로 설명하는 거시경제학의 핵심 모형으로 들어간다.
맥코넬·브루·플린, 『알기 쉬운 경제학』(5판), 정기화 역, 생능출판
한국은행, 국민계정 해설 (www.bok.or.kr)
통계청, 국민소득 통계 (kostat.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