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약을 각각 지켰는데 합치면 넘는다
약을 두 가지 이상 먹을 때 사람들은 보통 이렇게 생각한다. 이 약은 이 약대로, 저 약은 저 약대로 정해진 만큼만 먹으면 된다고. 대부분의 경우 그 생각이 맞다. 그런데 아세트아미노펜에서는 그 셈이 무너진다. 서로 다른 이름의 약 안에 같은 성분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 성분은 해열제와 진통제의 기본 재료로 쓰인다. 그래서 종합감기약에도 들어가고, 두통약에도 들어가고, 몸살약에도 들어간다. 처방으로 받는 진통제 가운데도 이 성분이 함께 들어 있는 것이 있다. 각 제품의 상자에는 「하루 몇 정까지」가 적혀 있지만, 그 숫자는 그 제품만 먹는다는 전제에서 나온 값이다.
국내 허가사항도 이 점을 명시하고 있다. 아세트아미노펜을 하루 최대 용량 이상 복용하면 간 손상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이 성분을 포함하는 다른 제품과 함께 복용하지 말라는 문구가 들어 있다. 감기약이나 두통약에도 이 성분이 들어 있을 수 있다는 안내가 함께 붙는다.
문제는 그 문구를 읽을 기회가 잘 없다는 데 있다. 상자를 뜯고 알약만 꺼내 두거나, 급할 때 물과 함께 삼키는 것이 보통이다. 겹침은 그 틈에서 일어난다.
하루 4,000밀리그램이라는 숫자
성인의 1일 최대 용량으로 오래 쓰여 온 값은 4,000밀리그램이다. 이 숫자는 최근에 정해진 것이 아니라 1977년과 1988년의 비처방약 심사 절차를 거치며 자리 잡은 값이다. 국내에서도 같은 상한이 유지되고 있다.
감이 잘 오지 않는 숫자다. 한 정에 500밀리그램이 든 제품이라면 여덟 정이 한도라는 뜻이다. 그런데 종합감기약 한 봉지에도 수백 밀리그램이 들어 있을 수 있다. 두 종류를 함께 먹으면 그 여덟 정어치가 생각보다 빨리 찬다.
미국 규제기관은 이 상한을 더 낮추는 방안을 권고 수준에서 제안한 적이 있다. 3,000에서 3,250밀리그램으로 낮추자는 내용이었고, 강제된 것은 아니다. 대신 실제로 강제된 조치는 다른 쪽에 있었다. 처방 복합제 한 정에 들어갈 수 있는 양을 325밀리그램으로 제한한 것이다. 2011년에 발표돼 2014년 1월까지 이행하도록 했다.
규제가 손을 댄 자리가 「한 사람이 얼마나 먹는가」가 아니라 「한 정에 얼마가 들었는가」였다는 점이 중요하다. 용량을 지키라고 안내하는 것만으로는 겹침을 막지 못한다고 본 것이다.
미국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나
이 문제의 규모를 보여 준 자료가 2005년에 나왔다. 미국의 22개 3차 의료기관에서 급성 간부전 환자를 6년 동안 전향적으로 모은 연구다. 기준을 충족한 662명 가운데 275명, 즉 42퍼센트가 아세트아미노펜에 의한 간 손상이었다.
여기서 갈리는 지점이 있다. 그 275명 가운데 131명(48퍼센트)이 비의도적 과량이었다. 자살 시도로 분류된 경우가 122명(44퍼센트)이었고, 의도를 알 수 없는 경우가 22명(8퍼센트)이었다. 절반 가까이가 스스로 해를 입히려던 것이 아니라 그냥 약을 먹다가 그렇게 됐다는 뜻이다.
비의도적 과량 그룹의 속을 들여다보면 이 글의 주제가 그대로 나온다. 그중 38퍼센트가 두 가지 이상의 아세트아미노펜 제제를 동시에 복용하고 있었고, 63퍼센트는 마약성 진통제가 함께 든 복합제를 쓰고 있었다.
추세도 함께 보고됐다. 급성 간부전 가운데 아세트아미노펜이 원인인 비율이 1998년 28퍼센트에서 2003년 51퍼센트로 올라갔다. 같은 기간에 이 약이 갑자기 더 위험해졌다기보다, 복합제가 늘고 접근이 쉬워진 환경이 함께 움직인 것으로 읽힌다.
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나
왜 하필 간인지, 왜 하필 이 성분인지는 대사 경로를 보면 정리된다.
치료 용량으로 먹으면 이 약의 대부분은 간에서 두 가지 경로로 처리돼 몸 밖으로 나간다. 그 과정에서 NAPQI라고 부르는 반응성 물질이 아주 조금 생긴다. 이때는 간에 있는 글루타티온이 그것을 붙잡아 무해한 형태로 바꾼다. 문제가 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과량이 들어오면 순서가 달라진다. 주된 두 경로가 포화되고, 남은 약이 다른 효소 경로로 흘러가면서 NAPQI가 평소보다 많이 만들어진다. 글루타티온이 그것을 계속 처리하다가 재고가 줄어든다. 보고에 따르면 글루타티온이 약 70퍼센트까지 줄어든 시점부터 NAPQI가 간세포 안에 쌓이기 시작하고, 그때부터 세포 안의 구조물에 들러붙어 손상이 시작된다.
이 그림에서 중요한 것은 여유분이 있는 동안에는 아무 신호가 없다는 점이다. 재고가 남아 있는 한 몸은 조용하다. 겹쳐 먹는 며칠 동안 아무렇지 않았다는 사실이 안전의 근거가 되지 못하는 이유다.
해독제가 있다, 다만 시간이 관건이다
다행인 점은 이 중독에 해독제가 있다는 것이다. N-아세틸시스테인이라는 약으로, 글루타티온을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를 공급해 재고를 채우고, NAPQI가 간세포의 구조물에 들러붙는 것을 막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효과는 시간에 크게 좌우된다. 급성 복용 후 8시간 안에 투여하면 간 손상 예방 효과가 매우 높다고 보고돼 있다. 0에서 4시간 사이에 시작하든 4에서 8시간 사이에 시작하든 결과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점도 함께 보고됐다.
그런데 이 8시간이 함정이 되기도 한다. 초기에는 증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속이 좀 불편한 정도이거나 아예 아무렇지 않을 수 있다. 「좀 지켜보자」로 반나절을 보내면 가장 효과가 좋은 구간이 지나간다. 그래서 판단을 미루지 말라는 안내가 붙는다.
겹치지 않게 하는 방법
대단한 지식이 필요한 일이 아니다. 확인하는 자리를 한 번 만드는 문제에 가깝다.
상자와 설명서에 아세트아미노펜 또는 파라세타몰이라는 이름과 한 정에 든 밀리그램 수가 적혀 있다. 두 약의 성분란에 같은 이름이 있으면 겹치는 것이다.
알약만 꺼내 두면 성분과 용량을 확인할 방법이 사라진다. 상비약은 상자째 두고, 낱개로 남은 것은 무엇인지 모르면 쓰지 않는다.
겹치는지 아닌지를 스스로 판단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두 제품을 함께 보여 주고 물어보는 것이 가장 빠르고 확실하다.
미국 자료에서 비의도적 과량의 상당수가 다른 성분과 함께 든 복합 진통제와 얽혀 있었다. 처방받은 약이 있다면 일반의약품을 더하기 전에 알린다.
확정된 것과 조심해서 읽을 것
이 주제는 겁을 주기 쉽고, 그러면 정확도가 떨어진다. 갈라서 적으면 이렇다.
확정된 것은 다음과 같다. 성인 1일 최대 용량으로 4,000밀리그램이 쓰여 왔다는 것, 국내 허가사항이 이 성분을 포함한 다른 제품과 함께 먹지 말라고 명시한다는 것, 미국 규제기관이 처방 복합제의 정당 함량을 325밀리그램으로 제한했다는 것, 그리고 2005년 전향 연구에서 급성 간부전의 42퍼센트가 이 성분이었고 그 절반 가까이가 비의도적이었다는 것이다.
조심해서 읽어야 할 것도 있다. 위 수치는 미국 자료다. 제품 구성과 의료 접근성이 달라 국내 비율이 같다고 말할 수 없다. 또한 급성 간부전 통계는 3차 의료기관에 도달한 중증 사례를 모은 것이라 일반 인구의 위험을 그대로 나타내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이 글은 특정 제품이 위험하다고 말하는 글이 아니다. 문제는 성분이 아니라 겹침이다.
자주 묻는 질문
아세트아미노펜은 하루에 얼마까지 먹을 수 있나요?
성인 기준 1일 최대 4,000밀리그램이 오래 쓰인 상한입니다. 국내에서도 이 값이 유지되고 있으며, 이를 넘기면 간 손상이 생길 수 있다고 허가사항에 명시돼 있습니다. 미국 규제기관은 이보다 낮은 3,000에서 3,250밀리그램으로 낮추는 방안을 권고 수준에서 제안한 바 있습니다. 개인의 적정 용량은 체중, 간 상태, 음주 습관에 따라 달라지므로 약사나 의사와 정하십시오.
감기약과 진통제를 같이 먹으면 왜 위험한가요?
종합감기약과 두통약에 같은 성분인 아세트아미노펜이 함께 들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각각은 정해진 용량을 지켰더라도 합치면 하루 한도를 넘길 수 있습니다. 국내 허가사항도 아세트아미노펜을 포함하는 다른 제품과 함께 복용하지 말라고 적고 있습니다.
성분이 겹치는지 어떻게 확인하나요?
제품 이름이 아니라 상자와 설명서의 성분란을 봅니다. 아세트아미노펜 또는 파라세타몰이라는 이름과 함께 한 정에 들어 있는 밀리그램 수가 적혀 있습니다. 두 약의 성분란에 같은 이름이 있으면 겹치는 것입니다. 판단이 서지 않으면 약국에 두 상자를 함께 가져가 물어보는 방법이 가장 확실합니다.
술을 마신 날에도 먹어도 되나요?
국내 허가사항은 간 손상 우려가 있어 음주를 피하라고 안내합니다. 음주는 간에서 이 약을 처리하는 조건을 바꾸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같은 용량이라도 위험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술을 마신 날의 복용 여부는 임의로 판단하지 말고 의료진과 상의하십시오.
많이 먹은 것 같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증상이 없더라도 곧바로 의료기관에 알리는 것이 원칙입니다. 이 약에는 해독제가 있고, 급성 복용 후 8시간 안에 투여하면 간 손상 예방 효과가 매우 높은 것으로 보고돼 있습니다. 다만 초기에는 증상이 거의 없을 수 있어 기다리는 사이에 그 시간이 지나갈 수 있습니다. 판단은 의료진이 하도록 하십시오.
참고 자료
이 글은 아래 자료를 바탕으로 정리했다. 국내 기준은 허가사항 안내를, 규모와 기전은 학술 문헌과 규제기관 문서를 따랐고, 각 자료의 결론을 넘어서지 않도록 했다.
- Larson AM, et al. Acetaminophen-induced acute liver failure: results of a United States multicenter, prospective study. Hepatology 2005;42(6):1364-1372. — pubmed.ncbi.nlm.nih.gov
- Prescription Drug Products Containing Acetaminophen; Actions To Reduce Liver Injury From Unintentional Overdose. Federal Register 2011. — federalregister.gov
- Acetaminophen Toxicity. StatPearls, NCBI Bookshelf. — ncbi.nlm.nih.gov
- N-Acetylcysteine. StatPearls, NCBI Bookshelf. — ncbi.nlm.nih.gov
- 아세트아미노펜 성분 제제 허가사항 — 1일 최대 용량과 중복 복용 주의 안내(식품의약품안전처 의약품통합정보시스템). — nedrug.mfds.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