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조직이 살아남는 방이 있다
장기를 옮겨 심으면 몸은 그것을 남으로 알아보고 공격한다. 이식 의학의 역사는 그 공격을 어떻게 달래느냐의 역사였다. 그런데 같은 조직이라도 어디에 넣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는 관찰이 오래전부터 있었다. 눈의 앞쪽 방, 그러니까 각막과 홍채 사이의 공간에 넣은 조직은 다른 자리에 넣었을 때보다 훨씬 오래 살아남았다.
처음에는 그 자리에 혈관이 적어서 면역세포가 물리적으로 못 닿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았다. 면역세포가 닿을 수 있는 조건에서도 공격이 일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몸이 그 자리에서 면역을 적극적으로 눌러 두고 있다는 증거가 쌓였다. 가만히 두어서 조용한 것이 아니라 계속 재우고 있는 상태에 가까웠다.
각막 이식이 다른 장기 이식보다 거부반응 걱정을 덜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조직형을 맞추지 않고도 상당수가 자리를 잡는다. 이것은 수술 기술의 결과이기 이전에 그 자리가 원래 그렇게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왜 하필 눈과 고환인가
두 자리가 같은 이유로 면역을 끄는 것은 아니다. 지키려는 것이 서로 다르다.
눈이 하는 일은 빛을 통과시키는 일이다. 그러려면 조직이 투명해야 한다. 그런데 염증은 부종과 세포 침윤을 부르고, 그것은 곧 혼탁을 뜻한다. 각막이 한 번 흐려지면 다시 맑아지지 않는다. 다른 장기에서라면 염증은 회복 과정의 일부지만, 눈에서는 염증 한 번이 그대로 기능의 손실이 된다. 그래서 눈은 감염과 싸우는 능력을 일부 내주고 투명함을 택했다.
고환의 사정은 다르다. 면역계는 태아기와 유아기를 거치며 무엇이 내 것인지를 학습한다. 그 시기에 몸에 없던 것은 나중에 생겨도 내 것 명단에 들어가지 못한다. 정자를 만드는 세포는 사춘기가 되어서야 성숙하기 시작한다. 학습이 끝난 뒤에 등장하는 세포인 셈이다. 그래서 장벽이 무너져 정자가 면역계에 노출되면 몸이 자기 정자를 남으로 보고 공격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
눈은 염증의 결과가 되돌릴 수 없어서, 고환은 그 세포가 내 것 명단에 없어서 면역을 끈다. 목적이 다른데 수단이 같다.
눈은 적극적으로 끈다
눈 앞방에 항원이 들어오면 눈 안의 세포들이 면역을 억제하는 신호물질을 내놓는다. 대표가 TGF-베타다. 이 신호를 받은 항원제시세포는 성질이 바뀐다. 인터루킨-10을 더 내고 인터루킨-12는 줄인다.
인터루킨-12는 면역 반응을 세포를 직접 공격하는 쪽으로 모는 신호다. 그것이 줄면 반응 자체가 다른 갈래로 흘러간다. 몸이 스위치를 끈 것이 아니라 선로를 갈아 끼운 것에 가깝다.
여기에 하나가 더 붙는다. 앞방을 두르는 세포 표면에는 FasL이라는 단백질이 박혀 있다. 면역세포 표면에는 Fas라는 짝이 있는데, 이 둘이 만나면 그 세포 안에서 스스로 죽는 절차가 켜진다. 문 앞에 스위치를 깔아 둔 셈이다. 이 장치는 지연형 과민반응과 보체를 붙잡는 항체를 억제하는 쪽으로 작동한다.
고환은 벽으로 시작한다
고환의 접근은 눈과 순서가 다르다. 먼저 물리적으로 가른다. 세정관 안쪽에는 세르톨리 세포가 서로 촘촘하게 붙어 만든 층이 있다. 이 층이 혈액-고환 장벽이다. 이 장벽이 정자를 만드는 세포들을 혈액 쪽에서 분리해 낸다. 접근 자체를 어렵게 만드는 방식이다.
그러나 벽만으로는 부족하다. 세르톨리 세포는 면역을 누르는 물질을 따로 내놓고, 보체가 함부로 작동하지 않도록 조절하는 역할도 한다. 고환 안의 국소 스테로이드 농도가 높은 것도 같은 방향으로 작동한다. 벽과 신호가 함께 있어야 이 상태가 유지된다.
세르톨리 세포 사이의 촘촘한 접합이 혈액-고환 장벽을 만들어, 정자를 만드는 세포를 혈액 쪽에서 갈라 놓는다.
세르톨리 세포가 면역 억제 물질을 내고, 보체가 함부로 작동하지 않도록 조절한다.
고환 안의 높은 스테로이드 농도가 면역 반응을 억누르는 쪽으로 함께 작동한다.
통째로 끄지 않고 갈래를 고른다
눈 앞방에 항원을 넣고 그 뒤의 면역 반응을 측정한 실험들이 있다. 결과가 흥미롭다. 지연형 과민반응은 확실히 눌린다. 그런데 항체를 만드는 쪽 면역은 그대로 남는다. 세포를 직접 죽이는 T세포 반응은 오히려 준비가 된다.
여기서 눌린다고 한 지연형 과민반응은, 항원에 닿고 하루 이틀 뒤에 그 자리가 붉어지고 부어오르는 종류의 반응이다. 결핵 반응 검사에서 팔이 부풀어 오르는 것이 이 반응이다. 면역세포가 몰려들어 조직을 상하게 하는 쪽이라, 투명함이 곧 기능인 눈에서는 이 반응 하나가 회복 불가능한 손실로 이어진다. 몸이 굳이 이 갈래를 골라서 누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통째로 끈 것이 아니라 갈래를 골라서 끈 것이다. 이 구분이 중요하다. 면역 특권을 면역이 없는 상태로 읽으면 완전히 틀리게 된다. 눈은 감염과 여전히 싸워야 하고, 실제로 싸운다. 눌린 것은 조직을 상하게 하는 종류의 반응이다.
이 현상에는 앞방 연관 면역 이탈이라는 긴 이름이 붙어 있다. 이탈이라는 말이 붙은 것이 정확하다. 반응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평소 가던 길에서 옆으로 새는 것이기 때문이다.
눈 혼자 하는 일이 아니다
이 이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따라가 보면 눈 바깥까지 이어진다. 눈, 가슴샘, 비장, 그리고 교감신경계까지 여러 계통이 관여한다고 보고돼 있다. 눈 앞방에 들어온 항원의 정보가 몸을 한 바퀴 돌고 와야 이 상태가 완성된다는 뜻이다. 국소 현상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신이 참여한다.
부품도 정해져 있다. TGF-베타2와 트롬보스폰딘-1이 이 과정의 유도에 필수적인 인자로 지목돼 있다. 둘 중 하나가 빠지면 이탈 자체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우연히 생기는 상태가 아니라 조건이 갖춰져야 서는 구조라는 뜻이다.
절대적이지 않다
여기까지 읽으면 면역 특권이 견고한 방어처럼 들린다. 그렇지 않다. 감염, 외상, 종양 앞에서 이 상태는 무너진다. 최근의 검토 문헌들은 이 지점을 특히 강조한다. 보호가 실패하는 조건을 아는 것이 보호 자체를 아는 것만큼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같은 성질이 반대 방향으로도 작동한다. 면역이 잘 들어가지 못하는 자리라는 것은, 일단 들어온 것이 오래 머물 수 있는 자리라는 뜻이기도 하다. 고환이 일부 바이러스의 은신처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지켜 주는 구조와 숨겨 주는 구조가 같은 구조다. 좋은 쪽으로만 읽으면 절반을 놓친다.
종양이 베낀다는 이야기 — 아직 논쟁 중
여기서부터는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 논쟁 중인 가설이다. 그렇게 읽어야 한다.
종양이 면역 특권의 설계를 베껴 쓴다는 생각이 오래전부터 있었다. 구체적으로는 종양세포가 FasL을 내보여, 자기를 공격하러 들어온 T세포에 죽음 신호를 걸어 버린다는 것이다. 눈 앞방이 쓰는 것과 같은 장치를 종양이 자기 주변에 깔아 둔다는 그림이다. 이 가설에는 역공격이라는 이름까지 붙었다.
그런데 반대 방향의 자료가 계속 나왔다. FasL이 오히려 염증세포를 불러 모은다는 보고가 있고, FasL을 내보이게 만든 종양이 동물에서 더 빨리 거부되었다는 실험도 있다. 같은 분자가 조건에 따라 정반대로 작동한 셈이다.
이 어긋남을 메우려는 절충안도 여럿 제시됐다. 국소 농도가 관건이라는 설명, FasL이 세포 표면이 아니라 미세한 소포에 실려 나갈 때만 그렇게 작동한다는 설명, TGF-베타 같은 억제 신호가 함께 있어야 한다는 설명이 그것이다. 어느 쪽도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이 대목은 확정으로 옮겨 적으면 안 되는 자리다. 연구가 조심스럽게 쓴 문장을 단정으로 바꾸면, 근거를 대고도 틀린 말이 된다.
자주 묻는 질문
면역 특권이란 무엇인가요?
몸의 특정 자리에서 면역 반응이 의도적으로 억제되어, 다른 곳이라면 거부당했을 이물질이나 조직이 오래 살아남는 성질을 말합니다. 눈 앞방과 고환이 대표적인 자리입니다. 면역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반응의 갈래가 조절되는 상태입니다.
왜 각막 이식은 거부반응이 적나요?
각막이 자리 잡는 눈 앞쪽 영역이 면역 특권 부위이기 때문입니다. 혈관이 적다는 구조적 이유와 함께, 그 자리에서 면역 반응을 적극적으로 억제하는 신호들이 작동합니다. 다만 염증이나 혈관 신생이 생기면 이 이점은 줄어듭니다.
면역 특권이 있으면 그 자리는 감염에 안전한가요?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일 수 있습니다. 면역이 접근하기 어려운 자리는 일단 들어온 병원체가 오래 머물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보호와 은신이 같은 구조에서 나옵니다.
종양도 면역 특권을 만드나요?
종양이 비슷한 장치를 쓴다는 가설이 있지만 아직 논쟁 중입니다. FasL을 이용한 이른바 역공격 가설은 지지하는 자료와 반대되는 자료가 모두 보고돼 있어, 확정된 사실로 다루기는 어렵습니다.
혈액-고환 장벽이 무너지면 어떻게 되나요?
정자를 만드는 세포가 면역계에 노출되면서 자기 정자를 공격하는 반응이 생길 수 있습니다. 정자는 면역계가 내 것을 학습하는 시기 이후에 만들어지기 때문에 처음부터 내 것으로 등록돼 있지 않습니다.
참고 자료
이 글은 아래 자료를 바탕으로 정리했다. 본문의 해석은 각 자료의 결론을 넘어서지 않도록 했고, 확인되지 않은 부분은 그렇다고 밝혔다.
- Immune Privilege and Eye-Derived T-Regulatory Cells. Journal of Immunology Research. — ncbi.nlm.nih.gov
- Ocular immune privilege and retinal pigment epithelial cells. Journal of Leukocyte Biology. — academic.oup.com
- Sertoli Cell Immune Regulation: A Double-Edged Sword. Frontiers in Immunology. — ncbi.nlm.nih.gov
- Not so Fas: Re-evaluating the mechanisms of immune privilege and tumor escape. Nature Medicine. — nature.com
- Tumor counterattack: fact or fiction? Cancer Immunology, Immunotherapy. — link.springer.com